인생은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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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17:53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억압과 부조리에 맞서는 문학의 에너지 수필, 비평

  문학은 우리 사회에 잠재하는 거대한 갈등을 언제나 새로운 언어로 재편한다.  차곡차곡 쌓인 억압의 흔적들이 점차 마그마가 되어 언젠간 폭발해 버릴 수 있음을, 문학은 생생하게 증언한다.  문학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회의 수많은 일원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한다.  법률과 제도만으로는 완전히 교통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을 문학은 기꺼이 감싸 안는다.  문학은 사회의 명령에 복종하는 개인 뿐 아니라, 사회의 명령에 저항함으로써 그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개인을 그려 낸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단지 '타인'이 아니라 언제든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이 사회의 수많은 억압과 부조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서 싸울 저항의 에너지를 장전하게 된다.
                                                                                                        (33.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정여울 지음/ 이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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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역사가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승리한 자들이 움켜쥔 시간에 명분을 제공한다.  문학은 지어냈지만 진실의 다른 모습이다.  역사를 알고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거와 미래가 나타난다.
  
  지배세력의 시선으로 정돈한 역사책과 다르게 문학은 작가의 눈으로 다른 측면을 포착한다.  유대인 사채업자 샤일록처럼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심성이 비뚤어질 수 있다.  앨리스가 상식과 반대로 돌아가는 거울 나라에서 겪는 난처한 일은 꼰대들과 얘기할 때 자주 나타난다.  1984년에서 윈스턴을 감시하던 감시카메라는 이제 곳곳에 설치되고 각자 축소한 형태로 들고 다니며 사생활을 찍고 퍼뜨린다.

  영화로 빨리 지나갈 때 주목했던 인물과 사건에 이어 텍스트는 배경을 드러낸다.  작가의 눈이 포착한 사각지대는 흔히 역사에서 작게 다루어지거나 정부가 언급하길 꺼린다.  좌절한 인물인 소설가와 시인은 정치 선전물과 다른 현실을 응시했다가 기어코 폭로하고야 만다.  사망의 골짜기는 아닐지라도 음침한 구석을 피한 배경과 자기 자랑만 일삼는 편협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다.  이런 소설은 중간에 버린다.  마구잡이 읽기로 얻은 소득이다.

  인정받는 역사가 하나일때 다른 입장에서 본 진실이 다섯일 수 있다.  나는 사랑했지만 상대는 스토커로 기억할지 모른다.  소설과 시가 이런 입체적인 시각과 해석, 입장 차이를 이야기한다.

  지난달 집의 랜선을 끊었다.  의외로 순하게 적응했다.  하지만 주변은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점령하고 이미지 중독을 퍼뜨린다.  이들 기기는 큰 출력장치와 퇴화한 입력장치로 구성된다.  가까운 미래에 소수가 읽고 쓰는 능력을 독점할 예정인가.  샴푸 설명서와 표지판, 트위터 단문 이상을 이해 못하는 세대가 출현할 것이다.  억압과 가난보다 더 비극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란.

2012/05/15 22:35

난 다른 건 다 버리고 살아왔어 / 지독한 우정-공선옥 단편소설

  "경희야, 내 나이 마흔다섯이야.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어머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 나이가 꼭 마흔 다섯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야."
  어머니 목소리가 격정으로 떨려나오고 있었다.  마흔다섯이라도 사랑을 하면 격정이 치밀어오르기도 할 것이다.  스무살인 나의 사랑에는 없는 격정 말이다.
  "그 사람은 영영 건강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난 포기할 수 없어."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나, 자신들의 상황이 최악임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랑하고 있으므로.  사랑이 그 모든 최악의 조건들을 덮어버리므로.
  "난 다른 건 다 버리고 살아왔어.  수정인 버리려야 버릴 수 없었을 뿐이야.  수정이 빼놓고 버릴 수 있는 건 다 버렸어.  그치만 이번만큼은 안돼.  내가 바보라는 건 나도 알지.  그치만 바보라도 그것만은 알거야.  무엇이 진짜고 무엇인 가짠지를 말이야.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말이야."
                                                                                                         (235. 명랑한 밤길 中 지독한 우정/ 공선옥 소설집/ 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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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 수정이가 엄마와 강릉에 놀러가러 집을 나섰다.  낯선 아저씨가 휠체어에 앉은 엄마를 조수석에 태웠다.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엄마의 말이 수줍었다.  엄마는 뇌성마비를 앓았고 연애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저씨가 병이 났다.  겨우 찜질방을 찾았지만 휴가철 속초는 대만원.  커플과 떨어져있던 수정이 다른 장애 커플의 애정행각을 발견한다.
  외할머니 상을 치른 후 엄마는 시렁에 하얀 무명끈을 맸다.  측간이자 헛간에 살던 소와 돼지, 염소는 보고만 있었지만 꼬마 수정이 엄마를 불렀다.  동네 사람이 가축을 내다팔고 고구마를 캐갔다.  돈을 주는 이는 없었다.  장에서 병든 고추를 팔다가 쫓겨난 엄마와 수정은 떠돌았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수녀가 도와줬다.  수녀원에서 모자원, 복지원, 영구임대 아파트로 옮겨다니며 모녀가 살았다.  수정의 열다섯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너 낳고 미역국 한그릇도 먹지 못했다."  막막한 수정이 화장실에서 수건걸이에 무명끈을 묶는데 엄마가 불렀다.
  새벽에 소변 보러 나왔다가 엄마가 친구 아줌마에게 전화하는 걸 엿듣는다.  아저씨가 애와 자기 중에 선택 하란다.  수정은 독립하겠지만 갈 곳이 없다.  그러나 엄마가 포기할 수 없는 애는 수정의 동생.  부모에게 얹혀사는 아저씨가 애를 지우라지만 엄마는 사랑을 말했다.  수정은 남자친구와 약속한 여행을 취소하고 시장에 간다.  이번엔 엄마에게 미역국을 실컷 먹여준다면서.

  장애를 타고나서 세상에 섞이기 힘든 여성이 있다.  혼자 키운 아이가 얼른 어른이 되겠다고 버둥대다 제 발에 넘어지고 일어나니 더 자라있다.
  상처와 모욕 속에서 살아지다니 인간은 무서운 존재다.  이 공포를 딸이 느낀다.  수정은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에 겁 먹었다.  십오년 전에 애 낳고 미역국을 못 먹고 떨었을 엄마를 생각하면서 제 목숨을 끊을 뻔 했다.  자기 상처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  건강한 몸이지만 딸의 삶도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혹한 예측으로 아이는 성장을 포기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지 않은 그 길에 또 선다.  괴로운 선택을 피하지 않는 엄마에게 딸이 동지가 되어준다.

  고통스런 삶을 버티는 약자의 공동체.  그들이 잡은 손은 강풍에 날리고 다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잘난 개인이 모인 집단이 파괴적인데 가난하고 아픈 이들은 다르다.  잘난게 없으니 그럴까.  때로 돕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황이 우정을 지탱한다.

  절망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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