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정여울 지음/ 이순/ 2012)
---------------------------------------------------------------------------------------------------------------------------------------------------------
문학과 역사가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승리한 자들이 움켜쥔 시간에 명분을 제공한다. 문학은 지어냈지만 진실의 다른 모습이다. 역사를 알고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거와 미래가 나타난다.
지배세력의 시선으로 정돈한 역사책과 다르게 문학은 작가의 눈으로 다른 측면을 포착한다. 유대인 사채업자 샤일록처럼 조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심성이 비뚤어질 수 있다. 앨리스가 상식과 반대로 돌아가는 거울 나라에서 겪는 난처한 일은 꼰대들과 얘기할 때 자주 나타난다. 1984년에서 윈스턴을 감시하던 감시카메라는 이제 곳곳에 설치되고 각자 축소한 형태로 들고 다니며 사생활을 찍고 퍼뜨린다.
영화로 빨리 지나갈 때 주목했던 인물과 사건에 이어 텍스트는 배경을 드러낸다. 작가의 눈이 포착한 사각지대는 흔히 역사에서 작게 다루어지거나 정부가 언급하길 꺼린다. 좌절한 인물인 소설가와 시인은 정치 선전물과 다른 현실을 응시했다가 기어코 폭로하고야 만다. 사망의 골짜기는 아닐지라도 음침한 구석을 피한 배경과 자기 자랑만 일삼는 편협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다. 이런 소설은 중간에 버린다. 마구잡이 읽기로 얻은 소득이다.
인정받는 역사가 하나일때 다른 입장에서 본 진실이 다섯일 수 있다. 나는 사랑했지만 상대는 스토커로 기억할지 모른다. 소설과 시가 이런 입체적인 시각과 해석, 입장 차이를 이야기한다.
지난달 집의 랜선을 끊었다. 의외로 순하게 적응했다. 하지만 주변은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점령하고 이미지 중독을 퍼뜨린다. 이들 기기는 큰 출력장치와 퇴화한 입력장치로 구성된다. 가까운 미래에 소수가 읽고 쓰는 능력을 독점할 예정인가. 샴푸 설명서와 표지판, 트위터 단문 이상을 이해 못하는 세대가 출현할 것이다. 억압과 가난보다 더 비극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이란.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