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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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0 05:45

약탈이 시작됐다 - 청소년의 성은 언제까지 금지일까 소설

  고등학교 2학년 한성준은 같은 반 결석자 권용태의 집에 찾아간다. 친하지 않지만 담임의 부탁이었다. 흙바닥에 탁자 몇 개 놓은 '평양주점'이 용태네 엄마 금선이 하는 가게다. 우연히 금선의 벗은 가슴을 보게된 성준은 사랑에 빠진다. 용태는 가출하고 집에 없었다.

  성준네도 엄마가 식당일 해서 살고 있다. 고졸 아빠는 실업자로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갔다.

  어느날, 초등학교 동창이자 어여쁜 부잣집 딸 윤지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자기는 행복하고 두렵다면서 소문을 믿지 말라고 한다.

  이어서 성준의 담임 서봉석이 학교에 안 나온다. 담임과 윤지가 사귀었다는 소문이 돈다. 변호사인 윤지 아빠는 딸을 집안에 가두고 휴대전화를 빼앗는다. 엄마는 몇 번이나 했냐고 묻는다. 징계위원회에 불려간 담임도 모욕을 당한다. 섹스 없이 데이트만 몇 번 했다고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다. 성준은 금선을 사랑하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무렵 종각역 근처에서 며칠에 한 번씩 대규모 싸움과 상점 약탈 사건이 일어난다. 사소한 다툼이 크게 번지는데 경찰도 속수무책이다. 집에 돌아온 용태가 구경 갔다가 유치장에 갇힌다.

  가난한 형편에 성적도 그저그런 성준은 빵공장에 들어가고 싶지만 엄마가 결사반대 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도 반드시 대학에 보낸다고 우긴다. 겨우 연락 온 아버지는 고기잡이배를 타겠다고 한다.

  성준은 중간에서 윤지와 봉석을 연결해준다. 용태가 돌아오고 성준이 술집대신 차린 금선의 김밥집을 돕는다.  교사 이전에 시인이었던 봉석은 금기에 도전하는 게 사랑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금선은 국졸 학력으로 용태의 친엄마도 아닌 서른여섯 독신여성이다. 공부가 싫은 용태가 약탈 때 만난 석수장이 일터로 들어가고 빈자리를 평양주점 단골남자가 채운다.

  성준은 상처받지만 금선의 결정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듣기만 했던 약탈현장으로 달려간다, 가끔 봤던 길고양이와 함께. 

  청소년 소설이다. 주된 독자가 십대란 뜻인데 꽤 세다.  난 기성세대의 벽에 부딪힌 청소년 이야기로 읽었다.

  (원조교제로 오해받는) 스승과 제자의 연애, (계모인) 친구 엄마와 사랑.  아직은 해결방법이 없는 금기다.  유교 뿌리 깊은 한국에서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네티즌까지 욕할 일이다. 

  그래도 사랑이잖아.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 하다며?
  칵테일 소주가 소주이듯, 금지된 사랑도 사랑이라면 절대 안될 건 없잖아요?
 
글쎄. 한국사회에서 청소년은 연애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겼다. 욕망 원천 봉쇄. 

  지긋지긋한 미성년자 시절이 생각난다.
  안되는 것만 많고, 되는 건 오직 공부와 순종뿐이었다.  6학년 때 같은반 친구를 대학생이 쫓아다녔다. 그러니 성숙한 요즘 십대는 오죽할까.  몇 년 전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 차려놓고, 키스하는 커플 보고 깜짝 놀랐다.  교복 입은 능력자들이 신기했지만 상큼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애정표현 하는 게 아이들답다.

  연애는 나이와 무관하다.  빈익빈 부익부.  학창시절 못한 연애를 나이 들면 하느냐.  선 봐서 결혼하고 애정 있네없네 쌈박질이나 한다.

  대중이 소비하는 문화는 낭만에 넘친다.  인간여자와 흡혈귀, 늑대인간이 삼각관계로 사귄다.  사랑하면 눈멀고, 죽도록 좋다면서 막상 결혼할 때는 따질게 삼백 가지다.  부모들 빠지고, 듀오 빠지고, 쓸데없는 물건 쌓아놓은 집에 둘만 남으면 허전하다.  눈 잘 보이고, 밥하긴 싫고, 남편은 게임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몇 년이나 같이 살까. 이혼율이 괜히 높은 게 아니다.

  열일곱 여고생과 연애한 서봉석 선생이 부르짖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금지된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서 아름다웠다.  그래서 현실세계 사람들이 헤어지고 타협하는가보다. 청소년들이 자라면 어떤 방식이든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빼앗긴 성욕과 연애는 어찌할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8년으로 단축하고, 일반 대학도 2년으로 줄여서 빨리 어른 만들면 어떨까. 사교육비 줄고, 출산율 증가에 도움 될텐데. 사회 출발이 늦어 피기 전에 삭는 어른보다 낫지 않나.
 

  고민해봐도 청소년이 제몫을 얻자면 기성세대란 문을 두들겨야 한다.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어머니랑 사는구나.  식구들은 몇이나 되는데?"
 그는 둘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일하시는구나.  무슨 일?  성준은 머뭇거렸다.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는 말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해요.  장 마담이 멀거니 그를 쳐다보다가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래서 얼굴이 어두운거냐…….  그녀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김치 냄새가 났다.  한 잔 더 해라.  넌 공부는 잘하냐?  학원도 다니고?  어미 하는 일 너무 부끄러워 마라.  먹고는 살아얄 거 아니냐.  먹고살려면 무슨 일이건 해얄 거 아니냐.  세상 사는 길이 한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천 가지 만 가지다.  지금 어미 사는 게 못마땅하면 넌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된다…….  (60)

  윤지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입증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설득이고 입증이고 무의미한 짓일 따름이다.  부모의 반대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윤지의 복종, 오직 그것 뿐이었다.  얼마나 야만적이고 얼마나 무자비한가, 이곳은, 이 가정은, 나의 부모는.  그녀의 자유는 환상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하던 이 집 또한 환상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임의에 따라 언제라도 순식간에 박탈될 수 있는 선물에 지나지 않았다.  (133~134)

  용태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공부를 그토록 지겨워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공부가 아닐 것이다.  용태가 학교를 그토록 증오한다면 그곳은 결코 좋은 학교일 리가 없다.  금선은 그렇게 믿었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사람이 사는 데 그다지 큰 배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중학교도 마치지 못했으니까.  그들 모자 사이에 그런 문답이 오가는 동안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성준은 혼란을 느꼈다.  단순하고 감동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얘기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179)

  "왜 남의 물건을 빼앗고 훔친단 말이에요?  왜 남들한테 그 못된 짓을 해요?"
  금선이 쏘아붙였다.
  "꼭 그런 짓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고…….  거기 가면 재밌거든요."
  "재미, 남의 물건 빼앗고 훔치고 불 지르는 재미?"
  "꼭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꺼번에 길바닥에 나와 고함지르고 욕하고 싸움질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우리 같은 것들이 언제 길바닥에서 고함 한번 질러봅니까?  경찰들한테 언제 욕지거리 한번 해봐요?  서울 사람들이 며칠마다 한 번씩 다 나와서 하는 일을 뭐 그다지…….  경찰에 끌려간 사람이 학생이요?  학생이라면 십중팔구 바로 다음 날 나올 겁니다."  (182)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성준은 봉석에게서 들은 말들을 하고 싶었다.  사랑이란 금기로 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금기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사랑이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이 그에게는,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왜인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금선이 말하는 세상 밑바닥 진구렁이 어떤 곳인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만 금선의 말보다는 그 어조를 통하여 그녀가 겪은 두려움과 염증을 능히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조였다.  들을 수록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해졌다.  그러나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밤의 망명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아, 이것은 빛인가 횃불인가…….  
  "널 보면 내가 젊어지는 것도 같고 착해지는 것도 같더라.  참말 고맙다, 성준아.  내 말 알아들었냐?"   (187)

  불쑥 성준이 물었다.
  "나이가 몇 살이에요?"
  금선은 어색하게 웃었다.
  "내 나이?  서른여섯이다."
  서른여섯이라면 서봉석 선생보다 한 살 많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요?"
  금선은 웃었다.  어째서일까.  그 웃음은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 같았다.  슬프고 공허하고……  무의미한 웃음 같았다.  적어도 웃음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차라리 울음에 가까웠다.  (188)

  8월 27일
  윤지의 아버지에게도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그들은 어떤 금기와 마주 서야 했을까.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 속히 돌아오세요.  제발요.)  어머니도, 거리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 들, 그들도 한때 사랑에 빠져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에 휘둘린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금기에 맞서 눈물을 흘리고 고통에 빠져 절망했을까.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했을까.
  나는 금선에게서 진실을, 작은 진실을 보았다.  그 진실은 기꺼웠으나 동시에 가혹했다.  나는 윤지에게서 진실을, 무자비한 진실을 보았다.  서봉석 선생님에게도, 그리고 윤지의 부모님에게서도 진실을 보았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름의 무게를 지닌 진실이었다. 
  나는 어떤 점에서는 윤지 부모님의 진실을 외면했다.  어째서?  사람들의 진실은 서로 상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것이 무섭고 슬프다.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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